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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집] 역전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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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찬 사진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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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형 |
B5 |
분량 |
14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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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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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가 |
20,000원 |
서평참여 |
1 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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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서평-오마이뉴스]
책동네
사람내 물씬 나는 사진책 하나
새로 나온 김기찬 사진책 <역전 풍경>을 보고
김기찬 씨가 새로 낸 사진책 <역전 풍경>을 보았습니다. 책값 이만 원이면 만만치 않은 돈이었지만 책방에서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보고 이만 원이 아닌 삼만 원이었어도 사서 볼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더불어 이 책을 사서 나 혼자만 집에 감춰두고 보는 게 아니라 틈틈이 갖고 다니면서 술자리에서 만나는 동무나,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사장님에게도 보여드리며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진책을 나누었습니다.
.. 처음 사진에 입문할 즈음에 나의 사진 주제는 행상이었다. 처음부터 행상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출퇴근길에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관심이 갔다.
아기를 업고 머리에는 풋과일이 잔뜩 담겨진 함지박을 인 아낙네와 어떤 노인은 어깨에 싸리비를 메고 또 어떤 이는 열쇠꾸러미를 가슴에 앞치마 두르듯 두르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잘 기록해 두었다가 훗날 한 권 책으로 남기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주말이면 뛰쳐나갔던 곳이 바로 서울역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역전엔 사람들의 통행량이 많은 것은 변함없지만 한두 시간 가만히 서서 들여다보면 30여 년 전 내가 사진기를 메고 처음 드나들던 역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 <김기찬 씨가 책끝에 쓴 말>
저는 <교보문고>를 찾아가면 맨 먼저 들여다보는 곳이 `사진' 칸입니다. 일 때문에 어린이책 칸도 꼼꼼이 살펴보지만 책값이 비싸서 쉽게 사서 볼 수 없는 사진책 칸은 부지런히 찾아가서 그야말로 부지런히 짧은 동안에 더 많은 사진책을 구경하려고 애씁니다. 삼만 원짜리 사진책을 그날 하루에 열 권을 본다면 삼십만 원이 굳은 셈이고 스무 권을 보면 육십만 원이 굳은 셈이니까요. 사진책은 한 번만 보고 그치는 책이 없습니다. 보통 백 번 이백 번쯤은 다시 보고 또 봐요. 그렇게 보며 이 사진이 어떻게 나왔고, 사진 속 모습은 무얼 담았는지, 또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무얼 생각했는가를 가만가만 짚습니다.
사진 한 장이 대단해서 그렇게 살피지는 않습니다. 글 한 줄이 대단하지 않듯 사진 한 장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게 있다면 바로 우리들 삶이에요. 바로 `대단한 우리들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우리들 삶이 지닌 궂거나 좋은 모습을 가리거나 속이거나 감추거나 비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이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운과 힘을 준다면 참 `훌륭한' 글과 사진과 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사진책을 찾아봅니다. 별것 아니고 그냥 한 번 쓱 보고 말면 되는 사진이지만, 그 사진에 눈을 서너 분쯤 그대로 두고 들여다보면 사진 속 사람들, 모습들, 그리고 여러 동물과 자연과 하늘과 땅이 제 가슴으로 파고듭니다. 웃는 사람, 우는 사람, 낯빛이 없는 사람, 찌푸린 사람... 온갖 사람들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지 않았던 때 사람들은 어떠했고, 지금은 어떠한지, 이렇게 달라지고 바뀌는 세월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더듬어볼 수 있어요.
이런 사진을 만나러 지난주에 <교보문고>를 찾아가서 만난 가슴 찌릿했던 사진책이 <김기찬 찍음-역전 풍경,눈빛(2002)>입니다. 1969년부터 1983년까지 김기찬 씨가 바라보고 느끼고 부대끼며 담아낸 서울역 둘레 모습이에요. 서울역으로 와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 어디에서 와서 서울역에서 내려서 제 갈 길을 가는 사람, 서울역 둘레에서 서울역을 오가는 사람을 붙들고 장사를 하는 사람, 1980년대까지 있던 `냉차'를 파는 아지매와 그 아지매를 따라 장사 나와서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가는 계집애와 사내애. 비 오는 날 비닐우산을 팔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갑자기 내린 비에 우산이 없어 서울역 앞에 멀거니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주머니 치마 속으로 들어가 비를 긋는 꼬마. 치마저고리를 벗어서 우산처럼 걸친 할머니, 바지저고리가 젖을까 봐 위로 잔뜩 치켜올리고 걷는 할아버지, 학교가방을 머리 위에 이고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꾹 찔러놓고 성큼성큼 걷는 학생, 새벽같이 일어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손수레를 밀며 장사 나오는 아줌마, 추운 겨울 몸을 잔뜩 웅크리고 지나가는 길손이 껌 한 통 사주길 기다리는 할머니들...
내 모습이고 네 모습이라, 우리 모두가 간직했던 열다섯 해 모습을 <역전 풍경>에서는 아스라한 옛일이라도 되는 듯 담아서 보여줍니다. 고작 스물두 해 앞선 일인데 지금 모습과는 견줄 수 없이 달라졌습니다. 그때고 지금이고 한데서 자는 한뎃잠이가 없던 건 아니었건만, 지금 서울역 앞은 너무도 어수선하지요?
고속철도를 놓는다며 광장을 없앴지만 사실은 집회를 하지 못하게 하고자 없앤 광장이라 사람들은 아주 좁은 곳, 손바닥만한 터에서 북적북적거립니다. 서울역 앞 너른 광장에서 사람들이 잠깐 쉴 수도, 모일 수도, 무엇을 즐길 수도 없이 만들어 놓은 지금입니다. 지금은 서울역 앞에서 시간을 보내기 힘듭니다. 너무도 많이 다니는 사람들 물결과 소주 몇 병을 안주 없이 들이키고 길바닥이고 걸상이고 아무데나 드러누워 자고 있는 한뎃잠이에 치여서 서울역 앞에 있기 힘듭니다. 그 대신 `돈' 내고 들어가야 할 곳만은 하나둘 새로 건물을 올리고 가게를 엽니다. 사람 냄새를 맡고 느끼는 그런 서울역은 알게 모르게 사라집니다.
사진으로라도 남았기에, 또 사진으로라도 남은 모습을 이렇게 책 하나로 엮고 묶었기에 지난날 우리들이 살아온 모습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날 모습을 돌아보며 `지금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난날이 더 행복하거나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회는 어둡고 먹고살기 힘들며 독재가 판을 치던 때였으니까요. 그렇다고 지금 사회가 더 밝아졌거나 먹고살기 좋은 건 아닙니다. 사람이 먹고 자고 마시기만 하며 살 수 없기에, 사람끼리 서로서로 어울리고 부대끼는 우리들 삶이 어떠하냐는 거죠. 지금 삶이 얼마나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지금 삶을 우리는 얼마나 아름답다고 느끼는지를 생각한다고 할까요. 김기찬 씨 사진책 <역전 풍경>은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따로 묻지는 않습니다. 그냥 보여줍니다. 보여주면서 말을 겁니다. `우리들은 지난날 이렇게 살았다'고, `이런 모습으로 서로 부대끼며 살았다'고요.
옷은 더욱 우아하고 예쁘며 멋있는 요즘, 먹을거리 하나 어렵잖이 가게고 밥집이고 사서 먹을 수 있는 요즘, 기차도 더 빠르고 아늑한 걸상이 있는 요즘, 전산화되고 또 무엇이 되고 저것이 되고 하는 요즘. 어떻습니까. 멀지 않은 옛날로 잠깐 돌아가서 우리 모습을 살피고 지금 우리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2002. 12. 14
최종규 (함께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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